민수기

민수기 13장 1~24절

예주아부지 2025. 4. 12. 17:09

생명의 삶 큐티
민수기 13장 1~24절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 “사람들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줄 가나안 땅을 살펴보게 하여라. 각 지파에서 지도자를 한 사람씩 보내라.”
3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모세는 바란 광야에서 그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이스라엘 자손의 우두머리들이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발생한 정탐꾼 사건이다. 출애굽 1세대의 분기점이 되는 사건으로, 이후 출애굽 1세대는 40년 광야를 헤매게 된다. 2절의 하나님의 명령은, 백성들의 요청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며 하신 말씀이다(신 1:19~23). 즉,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공격하라고 했으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는 백성들의 믿음이 부족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정탐을 허락하셨을까? 당연히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하나님께서는 정탐 활동으로 인해 하나님의 약속을 더 굳건하게 받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가나안 땅의 비옥함을 보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확인하길 원하셨다. 또한 그 하나님의 뜻대로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건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한 열 명의 정탐꾼은, 더 믿음과 용기를 잃어버렸고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게 되었다. (만약 정탐 없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이런 부족한 믿음으로는 가나안 땅을 받을 수 없다. 전투는 실패했을 것이고, 더 비참하게 광야를 떠돌게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정탐 활동으로 인해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 것은 아니다.)

4 그들의 이름은 르우벤 지파에서 삭굴의 아들 삼무아,
5 시므온 지파에서 호리의 아들 사밧,
6 유다 지파에서 여분네의 아들 갈렙,
7 잇사갈 지파에서 요셉의 아들 이갈,
8 에브라임 지파에서 눈의 아들 호세아,
9 베냐민 지파에서 라부의 아들 발디,
10 스불론 지파에서 소디의 아들 갓디엘,
11 요셉 지파 가운데 므낫세 지파에서 수시의 아들 갓디,
12 단 지파에서 그말리의 아들 암미엘,
13 아셀 지파에서 미가엘의 아들 스둘,
14 납달리 지파에서 웝시의 아들 나비,
15 갓 지파에서 마기의 아들 그우엘입니다.

정탐하기 위해 보낸 지파들의 대표자들은 민수기 1장 인구조사를 위해 하나님께로 지명받았던 족장들과 다르다. 이는 40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정탐 활동을 하기에 젊고 용기와 지혜가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레위 지파의 대표는 없다. 레위 지파는  그들만의 영토를 분배받지 않고, 각 지파마다 흩어져서 거주하는 특별한 신분과 직능 때문이다(민 35:2).) 안타깝게도 이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에는 모두 더 이상 말씀에 언급되지 않는다. (보통 40일은 하나님의 시험과 관련되어 있다. 모세는 40일이 걸려 십계명 돌판을 받았고, 예수님도 40일 광야에서 금식하셨다. 이들의 40일 정탐 시험을 통과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더욱 굳건한 믿음으로 자라났을 것이다.)

16 이들은 모세가 그 땅을 살펴보도록 보낸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모세는 눈의 아들 호세아에게 여호수아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란 뜻으로, ‘구원’을 뜻하는 ‘호세아’ 앞에 언약의 하나님을 강조하는 칭호 ‘여호와’의 첫 글자 ‘예’가 붙어서 이루어진 이름이다. (출애굽기 3장 14~15절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의 이미를 ‘스스로 있는 자’로 밝히고 있는데, 이는 영원토록 스스로 존재하는 인격적인 존재이자 모든 존재의 근원이심을 밝히는 것이다. 특히 언약과 관해서 이 이름이 쓰일 때는, 그 약속하신 바를 영원히 지키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모세가 ‘호세아’를 ‘여호수아’로 개명한 것은, 향후 가나안 정복 전쟁의 지도자로서 여호수아가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이뤄나가라는 뜻임을 추측할 수 있다.

본 절에 앞서 이미 여호수아로 기록된 것은, 아마도 이 개명 사건이 이미 이 전에 이뤄진 일임을 추측할 수 있다. 아말렉 전투(출 17:8~13) 때 처음으로 여호수아란 이름이 등장하는 데, 아마 이 첫 전쟁 때 모세가 이름을 바꿔줬다고 추측한다. 오합지졸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모세를 대신하여 첫 전쟁을 나가는 호세아에게 모세는 이름을 바꿔주며, 자신은 산꼭대기에서 아론과 훌과 함께 기도로 동역할 것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호세아’는 ‘여호수아’로 자신을 새롭게 하며 일생일대의 도전을 시작했을 것이고, 또한 모세는 여호수아를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했던 것이다. (아마도…)

어쨌든 여호수아의 개명 사건을 여기서 다루는 이유는, 정탐꾼의 공식적인 이름이 그 지파와 족보를 따라 등재하며 호세아가 여호수아로 개명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17 모세가 가나안 땅을 살펴보도록 그들을 보내면서 말했습니다. “너희는 네게브로 해서 산지로 올라가라.

네게브는 메마르다, 건조하다는 뜻으로 농경지로는 별로 사용되지 않고 우기(10~4월)에 목초지로 사용되는 곳이다. 그리고 산지는 가나안 중심부를 관통하고 있는 산악지역이다. 이곳은 막강한 철기 문화로 무정한 헷 족속, 여부스 족속, 아모리 족속 등이 거주한다(29절). 결국 모세의 말은 요다 동편으로 우회하여 들어가 탐지하지 말고, 가나안을 가로지르고 있는 산지를 타고 바로 북상하여 가나안 땅의 실상을 똑똑히 알아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18 그 땅이 어떤지, 거기 사는 사람들이 힘이 센지 약한지, 수가 적은지 많은지 알아보라.
19 그들이 어떤 땅에서 살고 있는지, 그 땅이 좋은지 나쁜지, 그들이 어떤 성들에 살고 있는지, 성벽이 없는지 튼튼한지,
20 토양은 어떤지, 비옥한지 메마른지, 나무들은 있는지 없는지 등등 말이다. 그 땅의 열매들을 갖고 돌아오는 데 최선을 다하라.” 그때는 포도가 막 익기 시작하는 시기였습니다.

모세가 알아보라고 명령한 것은 군사력, 인구밀도와 지역적 방어상태, 땅의 상태(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나무의 유무(나무가 자랄 수 있는 수분이 충분한지) 등이다. 즉, 살기 좋은 곳인지 알아볼 것과 또한 저들과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정보였다. 또한 그 땅의 열매들을 갖고 오라고 하면서 ‘최선을 다하라’라고 이야기했는데, 이는 ‘용맹스럽게 행하라’는 뜻으로, ‘꼭 그 열매를 가져오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에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한 것이며, 또한 열매를 통해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보여주기를 원했던 모세의 마음이 담겨 있다.

21 그리하여 그들은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의 르홉까지 올라가 그 땅을 살펴보았습니다.

신 광야는 가나안땅 제일 남쪽 경계이고(민 34:3), 하맛 어귀의 르홉은 가나안땅 가장 북쪽 경계를 말한다(삿 18:28~29). 즉 12명의 정탐꾼은 남쪽부터 북쪽까지 철저하게 정탐했다.

22 그들은 네게브 지방을 통해 올라가서 아낙 자손들인 아히만, 세새, 달매가 살고 있는 헤브론으로 갔습니다. 헤브론은 이집트의 소안보다 7년 전에 세워진 곳입니다.

22절은 21절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이다. 헤브론은 이집트의 소안보다 7년 전에 세워졌다는 것으로 그 깊은 역사성을 이야기한다. 즉, 그만큼 견고한 곳이라는 뜻이다. 특히 아낙 자손은 크고 강한 족속(33절)으로, 아히만, 세새, 달매는 특히 강력한 세 지도자를 말한다. (나중에 갈렙은 담대한 신앙과 굳센 믿음으로 이들을 용감히 쫓아냈다(수 15:14; 삿 1:20).)

23 그들은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포도송이 하나가 달린 가지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막대기에 끼워 그것을 날랐습니다. 그들은 또한 석류와 무화과도 땄습니다.
24 그곳이 에스골 골짜기라고 불린 것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꺾은 포도송이 때문이었습니다.

‘에스골’은 ‘포도송이’라는 뜻이며, 헤브론에서 가까운 과일 농사에 적합한 곳이다. ‘골짜기’는 우기(10~4월)에만 생기는 개울, 곧 ‘와디’(Wady)를 가리킨다. 이 와디는 건기에 말라버리지만 땅 속에 충분한 수분을 품고 있어 포도 농사가 잘 되는 땅이었다. 포도송이를 두 사람이 옮긴 것은 물론 그 포도가 무거워서였지만 또한 포도송이를 손상 없이 운반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의 정탐을 허락하셨다. 비록 12명 중의 10명은 이 시험에서 실패했지만, 이 시험을 잘 통과하면 더욱 강하고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40년 광야 생활은 출애굽 1세대가 모두 죽어야 끝나는 징벌로 보이지만, 사실 이스라엘 민족을 새롭게 하는 기간이었으며, 불신앙의 공동체를 신앙의 공동체로 바꾸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겪는 시험도 마찬가지다. 이는 징벌이나 불행이 아니라, 나의 믿음을 강하게 하는 시간임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유명한 철학자의 말도 있지 않은가? “날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날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