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5:25~38
생명의 삶 큐티
마가복음 15:25~38
25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아침 9시쯤이었습니다.
26 예수의 죄패에는 “유대 사람의 왕”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27 그들은 예수와 함께 두 명의 강도를 하나는 그분의 오른쪽에, 하나는 그분의 왼쪽에 매달았습니다.
28 (없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 죄목은 예수님께서 밝히신 대로(2절), ‘유대인의 왕’이라고 썼다. 이 죄악의 최정점에 이른 사건에도 진리는 남아있고, 구원의 길은 열려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 사람의 왕이시며, 동시에 모든 인류의 왕으로 오셨다. 그 왕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두 명의 강도와 함께 달리심으로 이사야 53장 12절 말씀을 이루셨다.
29 지나가던 사람들이 고개를 흔들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아하!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30 십자가에서 내려와 네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31 대제사장들도 율법학자들과 함께 예수를 조롱하며 자기들끼리 말했습니다. “남을 구원한다더니 정작 자기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32 그리스도, 이스라엘 왕아!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우리가 보고 믿도록 해 보아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두 사람도 예수를 모욕했습니다.
군중들의 모욕과 유대 지도자들의 조롱뿐만 아니라 사형을 당하고 있는 두 강도에게도 모욕을 당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런 것이다. 단순히 육신의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억울한 모욕과 오해가 예수님의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입혔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모욕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순종이지만, 그 모든 죄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모욕받고 오해받는 예수님의 마음이 어땠을까?
33 낮 12시가 되자 온 땅에 어둠이 뒤덮이더니 오후 3시까지 계속됐습니다.
34 오후 3시가 되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으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말은 “내 하나님, 내 하나님, 어째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입니다. (시 22:1)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으로 온 세계가 어둠에 휩싸였다. 이는 하나님으로 인해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 세계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님의 고통은 일시적이지 않았다. 무려 3시간 이상 계속된 고통이었다. 예수님은 그 생명이 끊어지기 직전 시편 말씀을 이루신다. 예수님 자신이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사망이라는 죄 값을 치르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죄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받는, 그 최악의 고통을 선포하신 것이다.
35 가까이 서 있던 몇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고 말했습니다. “들어 보라. 저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36 한 사람이 달려가 해면을 신 포도주에 듬뿍 적셔 막대기에 매달아 예수께 마시게 하며 말했습니다. “보시오. 저가 엘리야를 부르고 있소.”
37 그때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38 그리고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쪽으로 찢어졌습니다.
군중들은 물론 유대 지도자들 조차 예수님의 죽으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마지막 외치신 그 말씀조차 못 알아들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완벽히 사명을 감당하셨다. 그리고 그 증거로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 하나님께서 가로막힌 휘장을 찢으신 것이다.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은 너무 아름답고 동시에 너무 잔혹하다. 난 사실 이런 잔혹한 진실을 보고 싶지 않다. 그냥 평안하고 행복한 ‘전체 관람가’의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인생은 그리 편안하지 않다. 우리는 언젠가 ‘제한상영가’인 삶의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 나의 추악한 모습을 직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절망의 끝에서 언제나 함께하시며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생명의 빛을 바라봐야 한다. 그때부터 진정한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그 구원의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당신에게 나아갈 기회를 주셨다. 십자가의 핏값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리고 그 잔인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