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장 10~21절
생명의 삶 큐티
요한복음 3장 10~21절
어제 본문에 이어 예수님의 말씀이 계속된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거짓 선지자와 참선지자를 가려내야 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바리새인이며 율법학자로써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었기에, 이 말씀은 니고데모를 위시한 유대인 지도자들 모두를 책망하신 말씀이다.
지금도 신학 교수, 목사라는 직함을 갖고서도 삐뚤어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마 23:13) 아니, 스승이 되어야 할 연차가 된 성도 중에도 복음의 기본적인 것들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히 5:11~14)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앞서 설명하신 성령의 역사와 그 활동이다. 특히 ‘우리’라고 말씀하시며, 모든 믿는 자들이라면 알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그리고 이어 ‘너희’가 증언을 받지 않는다고 일침 하신다. 그러니까 이해하고 이해 못하고의 문제를 떠나 예수님의 교훈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태도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즉, 복음은 어려워서가 아닌, 믿지 않으려는 마음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구약시대 때부터 이어진,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유대 백성들의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땅의 일은 앞서 이야기한 성령의 역사하심이다. 니고데모는 이미 이 땅에 일어나고 있는 성령의 역사도 믿지 못하는데, 하늘의 일은 말해도 당연히 못 믿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그러니까 하늘의 일이란 태초부터 하늘에(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성육신 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자신에 대한 말씀이다. (위의 말씀은 ‘하늘에서 내려왔기에 하늘로 올라간다’고 하신 것으로 현재 완료형으로 쓰였다. 그러니까 미래와 상관없이 ‘하늘에 계신 자’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로 올라간 에녹이나 엘리야는 위의 말씀에 해당되지 않는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어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 하나님의 구속사업을 말씀하신다. 구약에 표적으로 보여주셨던(민 21:4~9),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하심이다.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사람들이, 장대에 높이 달렸던 놋뱀을 보면 낫는다는 말을 듣고 놋뱀을 보면 살았듯이,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원의 이유를 말씀해 주신다.
그러나 진리를 따르는 자, 예수님을 믿는 자는 참 빛되신 예수님께로 나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삶이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 뜻대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고 한다.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곳에는 참된 자유가 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원(영생)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복음에 대해 아낌없이 말씀해 주신다. 이는 니고데모가 주님을 찾아왔기 때문이요, 주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비록 니고데모가 이 말씀을 들을 때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요한복음 7장에 등장하는 모습과 요한복음 19장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 점점 더 믿음의 길로 나아갔음을 예상할 수 있다.(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유대인들에 의해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기독교는 깨달음의 종교가 아니다.
어느 순간 하나님의 우리 안에 찾아오셔서 우리를 한 순간에 새로운 피조물로 바꾸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삶은 옛사람의 모습과 계속 싸워가는 것이다. 이미 새로운 존재가 되었지만, 옛 모습의 잔재를 매일매일 버려가는 것이다. 한 순간 삶이 180도 변한 바울도 “나는 매일 죽노라”라고 “나를 매일 죽이는 삶을 산다고” 고백했다.
믿음의 삶이란 회심의 기억, 한 순간의 체험을 곱씹으며 사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을 주님께 맡기며,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그렇게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실패하고 넘어져도 유일한 구원되시는, 빛 되신 예수님께 다시 나아가는 것이다. 왜냐? 다른 길이 없으니까. 아무리 민망하고 부끄러워도, 예수님께 다시 나아가는 것이다.
니고데모의 모습처럼, “이것도 모르느냐”라고 혼날지는 몰라도 결국 알려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해 주시는 주님께 나아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