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민수기 31장 13~24절

예주아부지 2025. 5. 30. 09:23

생명의 삶 큐티
민수기 31장 13~24절

13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모든 지도자들이 그들을 맞으러 진영 밖으로 나갔습니다.
14 모세는 싸움터에서 돌아온 군대의 지휘관들, 곧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에게 화를 냈습니다.
15 모세가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모든 여자들을 살려 두었구나?
16 그 여자들은 브올 사건에서 발람의 말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거역하게 해 여호와의 회중에게 재앙을 내리게 한 바로 그 사람들이다.
17 그러므로 지금 당장 아이들 가운데 모든 소년들을 죽이라. 그리고 남자와 자서 남자를 아는 모든 여자들을 죽이라.
18 그러나 남자와 함께 잔 적이 없어서 남자를 모르는 여자 아이들은 너희를 위해 살려 주라.

승리하고 돌아온 군대의 지휘관들에게 모세는 불같이 화를 낸다. 그 이유는 이 미디안 여자들을 포로로 데려왔기 때문이다. 이 전쟁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 바알브올 사건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무려 24000명이 죽었다. 이번 전쟁에 나간 사람의 2배가 죽은 사건이다. 그런데 그 사건의 주범인 (모압 여자들과 함께 한) 미디안 여자들을 살려둔 것이다. (물론 그들은 음행과 우상숭배를 저지른 자신들의 잘못으로 죽은 것이고, 그것도 비느하스의 열정으로 중단된 제앙이다.) 특히 본문은 여기서는 이 계획이 ‘발람의 말’에서 나왔음을 밝힌다.

모세는 단호하게 그 자리에서 미디안 여자들을 죽이게 한다. 특히 어린 소년들도 모두 죽이고, 남자를 아는 여자들은 모두 죽인다. 유일하게 남자를 모르는 (어린) 여자만 살렸다(이 여자들은 주로 몸종이나 하인 또는 주인의 첩으로 이스라엘 내에 거주했을 것이다(신 21:10~14). 이것은 미디안 사람들의 씨를 멸절시키려는 것이다. 혹시라도 미디안 아이를 임신했을 여자까지 모두 죽인 것이다. 또한 더러운 이방 문화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이 하나남과 이방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자들과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상 숭배를 하던 미디안 여자들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들어왔다면, 그 우상숭배의 씨앗이 자라나 이스라엘 민족에게 더 큰 재앙을 가져왔을 것이다. (마치 솔로몬의 말년을 생각나게 한다.)

19 너희는 7일 동안 진 밖에 있어야 한다. 너희나 포로 가운데 누구를 죽인 사람이나 죽임 당한 사람을 만진 사람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스스로를 정결하게 해야 한다.
20 또한 모든 옷이나 가죽 물건이나 염소 털로 만든 것이나 나무로 만든 것을 다 정결하게 해야 한다.”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물론 옷, 기구 등은 시체와 접촉했기 때문에 정결의식을 치러야 했다.

21 그러자 제사장 엘르아살이 싸움터에 갔다 온 군사들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율법의 요구 사항은 이것이다.
22 금, 은, 청동, 철, 양철, 납 등
23 불에 견딜 수 있는 것은 다 불에 넣어서 정결하게 하라. 또한 이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로도 정결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불에 견디지 못하는 것은 물에 넣도록 하라.
24 일곱째 날에는 너희 옷을 빨아서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라. 그 후에야 너희가 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제사장 엘르아살은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정결케 할 것을 명한다. 사람과 물건은 모두 ‘정결하게 하는 물’(붉은 암송아지를 태워 만든 재를 섞은 물(민 19:9))로 정결하게 해야 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전쟁으로 승리한 이스라엘. 그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알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런 백성들을 모세가 바로잡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 마음을 모를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원하시는지, 왜 이런 일을 행하셨는지,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 언제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봐야 한다.

우리가 많은 일을 하지만, 그 본질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말씀을 읽고, 큐티하고, 암송하고, 간증하고, 또 이런저런 훈련을 하는 것은 모두 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저 “내가 하나님을 위해 어떤 일을 했다”, “내가 하나님께 도움이 됐다”는, 그런 게 아니다. 그저 하나님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고, 하나님의 뜻을 조금 더 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의 삶은 모두 그렇게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일이다. 그렇게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면 복잡해 보이는 일이, 또 우선순위와 중요도를 따지는 것들이 명확해진다. 삶의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 가운데, 그렇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을 놓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