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요한복음 5장 1~18절

예주아부지 2025. 2. 5. 23:46

생명의 삶 큐티
요한복음 5장 1~18절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셨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은 3년이므로 유월절인지 다른 명절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명절을 맞아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이기 때문에 예수님도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신 것이다.

예루살렘에는 베데스다 연못이 있었는데, 그 물이 움직일 때 먼저 들어가는 자는 병이 낫기에 많은 병자들이 몰려 있었다.

이 연못의 치유 능력이 진실인지 아닌지 궁금했었다.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사실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인가? 그러면 치유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

그런데 사실 이것이 진짜든 가짜든 큰 상관은 없다. (사실 영원한 생명에 비교하면, 육신의 병이 낫는 것은 별일 아니다.)

어쨌든 베데스다 연못의 룰이 좀 사악하다. 그러니까 모든 병이 낫는다면, 가장 고치기 힘든 병이나 가장 고통받는 사람이 고침을 받으면 좋을 텐데, 실제로는 (병자 중에) 가장 건강한 사람의 병이 낫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병이 깊은, 가장 간절한 사람에게는 더 절망에 빠지게 만드는 연못이다.(병자들에게 선착순이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블랙코미디인가? 그런데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런 경우가 많다. 나라의 좋은 복지제도가 있어도, 그나마 여유가 있어서 잘 아는 사람만 받을 수 있다든지. 또는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기 위한 개인회생, 파산 제도의 실제 혜택을 받는 사람의 대부분이 부자동네인 강남에 몰려 있다든지…)

아무튼 그런 연못 근처의 많은 병자 중에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찾아가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들은 모두 병이 낫기를 원한다. 게다가 낫기를 원하니까 이 베데스다 연못에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렇게 물으신 것일까?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병자는 또, 왜 이렇게 대답했을까? 난 병 낫기 글렀다는 말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러니까 기다렸다가 나 좀 베데스다 못에 넣어달라는 말인가?

병자는 두 가지를 모두 이야기한 것이다. 자신의 병 나을 소망 없음과 그럼에도 병이 낫고 싶어서 이곳까지 와서 누워있는 처지를 말이다.

예수님의 그 질문은 병자 자신의 현상태와 자기의 소망 없음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었다. 또한 그런 말씀을 하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는 말씀이기도 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어쨌든 이 사람은 그전에 죄가 있는 삶을 살았고 예수님을 만나, 병든 육신과 죄에 대해서 자유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제 자유하게 되었으니, 전의 삶과는 다른, 죄를 떠난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더 심한 것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하신다.


한편 유대인들은 이 사건 이후로 예수님을 공식적으로 핍박하게 되었는데, 이 예수님의 한마디 말씀이 그 이유를 잘 정리해 준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핍박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예수님이 안식일의 참 뜻(안식일은 그저 쉬는 날이 아니라 세상적인 일을 쉬고 하나님의 일(선)을 하는 날)을 알려주셨기 때문이요. 두 번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하나님과 동등되심을 밝히셨기 때문이었다.

결국 유대인들은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 더 죄에 빠지게 된 것이다.


주님은 희망 없는 오래된 절망에 빠진 사람을 찾아오셨다. 그래서 그 소망 없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죄의 문제도 해결해 주셨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전과는 다르게 죄에서 떠난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형식에 빠져 본질을 못 보고 고집부릴 수 있다. 주님은 모든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 주님은 우리에게 짐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짐을 대신 지어주시며 우리를 자유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