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장 35~41절
생명의 삶 큐티
요한복음 9장 35~41절
예수님께서 결국 출교 당한 사람을 찾아오신다. 세상에 버림받은 사람이다. 눈을 떠서 이제 좀 사람답게 살 수 있었던 사람이, 진실을 이야기하다가 쫓겨났다. 이제 부모도 이웃도 없어진 사람이다. 지금까지 맹인으로 구걸하며 살던 사람, 아니 평생을 그렇게 살 것 같았던 사람이, 눈을 떠 정상인이 되었는데, 이제는 유대인의 모임에서 추방당했다. 그는 어쩌면 이제 좀 흥분했던 머리가 식는 느낌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평범한 사람이 되었는 줄 알았는데, 곧바로 자기 민족의 이방인이 된 것이다. 눈은 떴으나, 이제 같은 동족인 유대인들에게는 구걸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 된 것이다.
예수님은 그를 만나 위로하시거나, 앞으로의 대책을 알려주시지 않았다. 그저 한 가지만 질문하신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인자는 곧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말한다.
“선생님, 그분이 누구신지 알려주십시오. 그분을 믿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지금 너와 이야기하는 내가 바로 그다”
그 사람은 즉시 믿음을 고백하며 예수님께 절했다.
이것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대략 추측해 본다. 그는 출교 당한 것이나 자신의 처지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메시아)을 찾게 됐다. 육체의 눈을 뜨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이 저주받은 죄로 인한 고통의 삶이 아닌 것을 깨달았고, 이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진짜 빛을 주신 것이다. 육신을 치료해 주신 것은 그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의 전 과정에 불과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나면서 맹인 된 사람에게 참 빛을 주시는 이것을 알려 주시려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신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내가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맹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다”
이 말을 들은 바리새인 중에 한 사람이 물었다.
“우리도 맹인이란 말이요?”
그럼 예수님 말씀의 뜻이 무엇인가? 먼저 예수님께서 ‘못 보는 사람을 보게 하는 것’은 방금 일어난 일로, 메시아를 모르는 사람에게 메시아를 알게 하여 믿게 하신 것임이 밝혀졌다. 그런데 이 질문을 한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당신을 메시아로 믿지 않는) 자신은 맹인이냐고 물은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예수님의 뒷 말씀은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예수님 말씀의 뒷부분, ‘보는 사람은 장님이 되게 하시는 것’이 어떤 뜻인지 예수님께서 확실하게 말씀해 주신다.
“너희가 맹인인 것을 인정했더라면 죄가 없으나 맹인이 아니라고(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을 향해 직설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바리새인들이 맹인임을 인정했다면,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이신 자신을 믿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가 맹인이 아닌, ‘보는 사람’이라고 하니 맹인이 되는 예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맹인이 되게 하신다. 누구든 스스로 맹인임을 고백하는 사람에게는 눈을 뜨게 해 주신다. 그러나 자신이 맹인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그 죄가 그대로 있는 것(구원받지 못한다)이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많은 일들이 우리를 절망하게 하고 고민하게 하지만 진정한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얻은 것은, 이 땅의 문제가 해결되는 ‘작은 일’이 아닌 것이다. 온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의 뜻에 티끌 같은 내가 동참하게 되는 것이며,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내 가족과 내 민족과 내 삶의 터전을 버려도 마땅히 기뻐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