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장 36~44절
생명의 삶 큐티
요한복음 11장 36~44절
예수님의 눈물을 본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나사로를 위해 눈물을 흘리셨다고 생각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무능력한 자신으로 인해 우셨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의견은 예수님을 또다시 비통하게 만들었다. 예수님이 슬퍼하시며 가슴 아파하셨던 것은 바로 유대인들과 마리아, 마르다의 믿음 약함, 혹은 믿지 못하는 것으로 인한 것이었다. 예수님의 슬픔은 사람과 다르다. 예수님을 가슴 아프게 만드는 것은,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 때문이다.
“돌을 옮겨 놓으라”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이는 나사로의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말한다. 이 명령은 누가 봐도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르다가 말한다.
“주님. 이미 죽은 지가 나흘이 되어서, 벌써 썩은 냄새가 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마르다의 불신앙이 또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믿느냐’고 물어보셨는데, 그때에는 믿는다고 고백했던 마르다가 믿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예수님은 다시 마르다를 깨우쳐 주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유대인에게도, 그리고 마르다에게도 끊임없이 설명하시며 가르쳐 주신다. 그리고 이제는 그 말씀대로 보여주신다.
사람들이 돌을 옮겨 놓자,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다 듣도록 말씀하신다.
“아버지!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 내가 알았습니다. 그러나 여기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말을 합니다.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이 사람들이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곳에 있는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모두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 믿기를 원하셨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나사로를 부르셨다. 이 역시 주변 사람들이 모두 듣게 하기 위함이었다. 나사로가 살아나는 것은, 예수님이 부르셨기 때문이요,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생명이고 부활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었다.
나사로가 팔, 다리에 천을 감싼 모습 그대로 무덤에서 걸어 나왔다. 그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져 있었는데, 이것은 바로 나사로가 죽고 난 후 장사 지낸 모습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가서 풀어주라고 말씀하셨다. 나사로를 감싸고 있던 수건과 천들을 풀어놓은 사람들은 더 확실하게 나사로의 살아난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돌을 옮겼던 사람들도, 그 썩은 냄새를 맡았을 것이고 무덤도 확인했을 것이다. 그들은 조금 더 예수님의 이적을 인상 깊이 체험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사람들도 이 이적에 참여시키시며, 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기 원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믿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것이다. 나사로가 살아난 것을 모두가 경험했지만,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써, 부활이요 생명이신 것, 믿는 자에게 영원히 사는 영생을 주셨다는 것은, 오직 믿는 사람들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오직 믿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사람의 역할이 있다. 하나님께 기도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믿고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 일들로 하나님께서 이뤄주신 일들을 더 깊게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안 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믿고 더 참여하는 자는, 더 큰 은혜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도는 결핍으로 시작된다. 이 땅의 어떤 사건으로 인해, 할 수 없는 일로 인해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 혹은 어떤 고통 가운데서 벗어나기 위해 기도한다. 그런데 이때 이 땅의 일들만 보는 사람들은, 그 사건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그저 그 결과에만 집중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에만 감사하며, 그 기도 응답에 대해서만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영광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 것을 나타내시는 것’에 있다. 진짜 우리가 체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어떠하신지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이 땅의 어떤 사건들도,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것은 자신을 나타내기 위함이셨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육신이 죽어도 죽지 않고(다시 부활할 것),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것을 알려주신 사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