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요한복음 14장 15~24절

예주아부지 2025. 2. 21. 07:59

생명의 삶 큐티
요한복음 14장 15~24절

15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한다면 자신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예수님의 계명은 무엇인가? 내 생각에 예수님의 계명은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먼저 13장 34절에 말씀하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하신 ‘새 계명’인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앞부분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다. 즉, 기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포괄적으로는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 된다. 따라서 이 두 가지 모두 예수님의 계명으로 보기에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어쨌든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성령님이 임하셨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할 것이니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다른 보혜사를 보내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17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안다. 그분이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대언자이시기 때문에(요일 2:1) 또 다른 보혜사(대언자, 위로자)를 보내신다고 말씀하신다. 이 분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말씀하신다. 세상 사람들은, 빛 되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장님이었던 것처럼, 성령님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성령님을 알고 있고, 또한 성령님이 우리 안에 함께 계신다.

18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볼 것이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고’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이나 재림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먼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말씀하신 것이라면, 분명 예수님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금방 다시 찾아오시지만, 사명만 맡기시고 다시 하나님께로 가시기 때문에 ‘고아처럼 내 버리 두지 않으신다’는 말씀과는 맞지 않다. 그렇다면 재림 때를 말씀하셨을까? “조금 있으면 … 너희는 나를 볼 것이다”라는 말씀에 비춰 봤을 때도 재림 때를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재림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마지막 때를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말씀은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성령님은 예수님과 한 분이시기에 예수님께서 ‘나는’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20 그날에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성령님이 오시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임하셔서, 우리와 동행하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때,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임하셔서 일하심을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나님께 순종하신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21 누구든지 내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고 나 또한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에게 나를 나타낼 것이다.”

15절의 말씀의 역을 말씀하신다. 명제가 참일 때 역은 참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는 역이 성립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킨다(명제 : 참)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이다(역) - 참과 거짓을 알 수 없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이) - 참과 거짓을 알 수 없다. (‘역’과 대우의 관계. ‘역’이 참이면 ‘이’도 참이다.)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대우 : 참)

‘명제’가 참이면 ‘대우’만 참이지만, 이 말씀은 ‘역’도 참이기 때문에 ‘이’도 참이 된다. 이건 그냥 수학이 생각나서 적어봤는데, 가끔 어떤 사람은 한 ‘명제’(말씀)에 대해 ‘역’이나 ‘이’를 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서 써봤다.

예들 들면 이런 말씀이다. (마 22:37~39)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한다(명제 : 참)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다(역 : 거짓. 항상 참이 아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는다(이 : 거짓. 항상 참이 아님)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대우 : 참)

즉,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자는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어쨌든 위 예시와 다르게, 사랑과 계명은 같이 간다는 것이다.

22 그러자 가룟 유다가 아닌 다른 유다가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 우리에게는 자신을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가룟 유다가 아닌 유다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눅6:16; 행 1:13)’이며 이는 ‘다대오(마 10:3)’이다. 21절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만 자신을 나타낸다”라고 하시자, 유다는 “왜 세상에는 나타내지 않으시냐”라고 물었다. 왜냐하면 유다는 예수님께서 세상에서도 명성을 떨치시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23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실 것이요, 아버지와 내가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다대오에게 말씀해 주신다. 믿는 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심은, 하나님 아버지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며, 하나님과 예수님이 그 사람과 함께한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나님과 더불어 성령님을 통해 그에게 나타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는 성령충만(하나님께서 함께)하여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담대히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에 나타날 수가 없다. 아니 세상이 알 수도 없는 것이다.)

24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한다. 너희가 듣고 있는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의 계명도 지키지 않는 자라고 알려주신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삶을 보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로써 바르게 살고 있는지 우리의 삶을 되돌아봐야 한다. 믿는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가끔 정치권(혹은 정치에 대한 이야기만 나와도)을 보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정치보다 믿음이 먼저일 텐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 이야기로 흥분한 모습을 보면, 그 속에 하나님이 없는 것 같다. 사랑이 없다. (물론 진짜 믿는 사람들이 없진 않겠지만, 그래도 정치가 우선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내가 너무 정치에 대해 몰라서,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표현에, 그 행동에 하나님의 사랑을 찾기가 너무 힘들다.

물론 돈에 대해서나, 고통에 대해서도, 혹 자기가 잘 아는 일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상황에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때로는 교회에서 조차 싸움과 분열이 일어나지 않는가?

우리는 진짜 목적을 놓치면 안 된다. 진짜 목적이 무엇인가? 이 땅을 더 선하게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것인가? 이 땅에서, 눈에 보이는 부흥이, 결과가 나타나야 하는가? 아니다. 착각하면 안 된다. 우리는 결과를 내는 사람들이 아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달린 것이고, 이 땅에 보이는 것들도 진짜 결과는 아니다. 다대오와 같은 질문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뜻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계명이 무엇인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주님의 사랑을 따라 사랑하는 것이다. 내 안에 그 사랑이 없으면 이미 실패이고, 내 안에 예수님의 사랑이 있으면, 그것이 전부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데 더 무엇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