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요한복음 21장 15~25절

예주아부지 2025. 3. 15. 21:56

생명의 삶 큐티
요한복음 21장 15~25절

15 그들이 아침 식사를 끝마치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예 주여,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양 떼를 먹여라.”

식사를 마치시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신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이전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반석)’이라는 이름을 주셨었다. 그리고 베드로의 신앙고백(“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었는데, 지금은 그 전의 이름인 시몬으로, 인간적인 아버지 요한의 아들로 부르신 것이다. 이 호칭의 의미를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베드로라는 반석의 이름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함으로, 예전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마치 베드로를 처음 만난 것처럼, 다시 베드로와의 관계를 시작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인간적인 베드로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심으로 겸손하게 하시는 호칭이다. 사명을 맡겨주시기는 것에 인간적인 자신감이나 열정이 아닌 진실함과 겸손함으로 대답하길 원하셨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의 이 질문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는 뜻이다. 둘째, “네가 이 다른 제자들을 사랑하는 것보다(혹은 배나 다른 물건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는 것이다.

결국 ‘더’ 사랑하냐고 물어보신 것이다. 베드로는 전에 다른 제자들보다 자신이 주님을 더 사랑한다고 고백했었다(막 14:29). 베드로는 그때가 생각났을 것이다. 베드로는 예전 경솔했던 자신의 말을 생각하며 겸손히 대답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16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수께 대답했습니다. “예 주여,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 떼를 쳐라.”
17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째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근심하며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 떼를 먹여라.

예수님은 그렇게 두 번 더 질문하신다. 두 번 더 질문하실 때는 이제, 다른 사람에 대한 것은 빼고 물으신다. 이는 베드로의 진심을 물으시는 것이다. 베드로는 세 번째 물으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더 고심하며 대답한다. 왜냐하면 호언장담했던 자신의 실패 경험으로, 자신의 대답에 자신이 없던 것이다. 베드로는 세 번째로 주님께 의지하여 대답한다. “주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는 예수님께 세 번, 겸손한 사랑 고백을 하게 된다. 예수님의 세 번 질문은 베드로의 진심을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세 번 모두 답변하심으로써 베드로의 고백을 받아주신 것이다.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옷 입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리고 너를 묶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19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인지를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라!”

사명을 맡기시고 베드로의 마지막을 예언하신다. 베드로의 마지막은 순교로써, 육신적으로는 고통의 길이지만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다.

20 베드로가 돌아보니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이 제자는 만찬에서 예수께 기대어 “주여, 주를 배반할 사람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21 베드로가 그 제자를 보며 예수께 물었습니다.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베드로는 곁에 있던, 사랑하는 친구이며, 같은 제자이고, 언제나 함께 했던 동생인 요한에 대해 예수님께 물었다. 자신의 순교 예언을 듣고 요한이 어떻게 될지 궁금했던 것이다. 베드로는 아직은 어린 요한이 걱정되어 물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과 요한의 사명을 비교하는 마음으로 물었을지도 모른다.

22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원한다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요한의 사명과 베드로의 사명은 전혀 상관없는 것임을 알려 주신다. 서로가 받은 달란트와 역할이 다르며, 그것은 비교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23 이 말씀 때문에 이 제자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형제들 사이에 퍼졌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원한다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신 것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오해한 많은 사람들은 늙어가는 요한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렸던 것 같다. 이와 같이 말씀에 대한 오해는 언제나 벌어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말씀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공부하고, 혹시라도 말씀을 오해하지 않도록 고집부려서는 안 된다. (전체 문맥에 따라, 다른 말씀과 함께 살펴보며, 또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말씀을 공부해야 한다.)

24 이 일들을 증거하고 기록한 사람이 바로 이 제자입니다.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25 이 밖에도 예수께서 행하신 다른 일들이 많이 있으나 그 모든 것을 낱낱이 다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한 책들을 다 담아 두지 못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의 저자가 요한임을 밝히며, 당시에 있던 사람들이 (지금은 누구인지 모르지만) 보증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은 이 땅에 다 기록할 수 없음을 밝힌다. 그만큼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심오하여 다 풀어쓸 수 없으며, 사도 요한이라는 저자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무한하심을 증거 하며 요한복음이 끝난다.


베드로의 고백으로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어린양’을 맡겨 주신다. 사람을 낚는 어부(전도자)의 사명에서, 이제는 양육자로서 사명으로 맡겨주신 것이다. 베드로는 실패했으나, 예수님께서는 실패한 자에게 더 큰 일(복음을 전하는 것에 사역을 더 추가해 양육하는)을 맡겨주셨다. 세상은 실패자를 멀리하지만 주님께서는 실패자를 사용하신다. 왜냐하면 인간적으로 실패해 본 사람만이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세도 바울도 그렇게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한 것이다.)

또한 사명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달란트와 역할이 다르다. 따라서 가는 길이 다 다르다.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내가 확신하는 일들이라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나와 같은 사람을 만들 필요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인 것이다. 서로 다른 역할로 서로 돕고 하나 되어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