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민수기 6장 1~12절

예주아부지 2025. 3. 28. 17:15

생명의 삶 큐티
민수기 6장 1~12절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일러라. ‘남자든 여자든 특별한 서원, 곧 여호와께 나실 사람으로 살겠다고 서원을 하면

오늘 본문은 나실인 제도에 대해 나온다. 나실인은 히브리어 ‘나지르(구별하다, 분리하다)’에서 나온 말로 ‘성별 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을 말한다. 세상적 욕망을 끊어버리고 자신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서원한 사람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했다.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며 자신을 구별하는 일에 힘썼다.

나실인 제도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게 나온다. 이는 남성을 우선했던, 시대적 사회적 관행을 초월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자유로운 만남이 가능케 했던 하나님의 특별법이다. 자신을 구별시켜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서원한 사람이면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일정기간 또는 평생 동안 나실인이 될 수 있었다. 한편 나실인 중에는 삼손(삿 13:5)이나 세례요한(눅1:15) 등과 같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평생 나실인으로 헌신한 자도 있었고, 사무엘처럼 부모의 서원에 따라 나실인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삼상 1:11).

3 그는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말고 포도주나 독한 술로 만든 식초도 마시지 말고 어떤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포도는 그냥 포도든 건포도든 먹어서는 안 된다.

나실인은 포도나무에서 얻는 어떤 열매도 먹을 수 없었다. 이는 술로 대표되는 ‘모든 유혹’을 멀리하며, 동시에 ‘가장 큰 기쁨’을 오직 여호와께 둔다는 뜻이다.

4 나실 사람으로 사는 기간 동안 그는 포도원에서 나오는 것은 익지 않은 포도든, 포도 껍질이든 간에 무엇이든 먹어서는 안 된다.

익지 않은 포도(혹은 포도씨)나 포도 껍질조차도 먹지 말아야 한다. 당시 포도 껍질을 먹었기 때문이기보다는 포도나무와 관련된 열매는 아주 조금이라도, 철저히 먹지 말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또한 나실인으로 서원한 기간이 지나면 평범한 일반 백성과 똑같다는 것을 말해준다.

5 그가 헌신하기로 서원한 기간 동안 그는 머리에 면도칼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는 여호와께 나실 사람으로 살겠다고 서원한 기간을 채우기까지는 거룩해야 한다. 그는 자기 머리털이 자라게 놔두어야 한다.

머리를 깎지 말아야 했다. 이는 아마도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전부 드렸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 드려진 자의 표시가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긴 머리카락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이 하나님께 드려진 자로써 거룩하게 살도록 자신을 지키고 있음을 알았을 것이며, 또한 그 자신도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보며 하나님께 더욱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한편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대머리와 머리를 완전히 밀어버리는 것은 수치스럽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간주됐으며(왕하 2:23), 반대로 머리를 전혀 깍지 않는 것은 나실인과 같은 특정 사람에게만 허용됐던 것 같다(겔 44:20).

6 여호와께 나실 사람으로 살겠다고 서원한 기간 동안 죽은 사람에게 다가가면 안 된다.
7 부모나 형제자매가 죽더라도 그는 그들로 인해 부정해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께 헌신한 표가 그의 머리 위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실인은 시체와 접촉할 수 없었다. 시체는 결국 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죄의 결과로 시작됐다) 따라서 나실인이 시체를 멀리해야 하는 것은 의미상 죄를 멀리해야 하는 것의 상징적 표현이다. 부모나 형제자매의 시체도 가까이할 수 없던 것은 가족보다도 하나님 우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8 헌신한 기간 내내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사람이다.

위와 같이 나실인으로 사는 기간 동안은 자신을 거룩하게 유지해야 했다. (유대 랍비들에 의하면, 나실인 기간은 최소 한 달 이상이 되어야 했다고 한다.)

9 어떤 사람이 갑자기 그의 곁에서 죽어서 그가 헌신의 표로 기른 그 머리털을 더럽히면 그는 자신을 정결케 하는 날, 곧 일곱 번째 날에 자기 머리를 밀어야 한다.

나실인 곁에서 갑자기 어떤 사람이 죽은 경우는 불가항력적인 사건이다. 이럴 경우 ‘그 머리털이 더럽혔다’고 한다. 왜냐하면 ‘머리털’은 전인격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부정하게 된 날로부터 7일째 되는 때 머리를 밀어야 했다. (시체를 만지면 7일 동안 부정하다(민 19:11))

10 그리고 여덟 번째 날에는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회막 입구로 가져와 제사장에게 주어야 한다.
11 제사장은 하나는 속죄제물로, 다른 하나는 번제물로 올려 그가 시체로 인해 죄를 지은 것에 대해 속죄를 한다. 그리고 그날 그는 자신의 머리를 거룩하게 해야 한다.
12 그는 여호와께 나실 사람으로 살겠다고 헌신하는 기간을 다시 서원하고 1년 된 숫양 하나를 속건제물로 바쳐야 한다. 그가 나실 사람으로 살겠다는 자신의 서원을 더럽혔기 때문에 지나간 날들은 무효가 된다.

여덟 번째는 회복과 부활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뜻한다. 비둘기 두 마리를 가지고 회막 입구로 가야 했다. 비둘기는 정결하게 될 때 속건제에 드려지는 정결한 새다. 회막 입구는 성소 앞, 번제단이 있는 곳이다. 부정하게 된 자신을 하나님께 보이며 성결과 헌신을 새롭게 했을 것이다. 그렇게 피흘림의 제사를 통해 속죄의 은총을 얻을 수 있었다.
지나간 날은 무효가 되었으므로, 이제 나실인의 기간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1년 된 숫양을 드리는 것은 주로 하나님과 이웃에게 손해를 끼쳤을 경우 드리는 제사였다. (나실인이 다시 정결케 되는 것은 레위기 14장의 정결 규례와 비슷한 뜻을 가진다.)


구약시대와 달리 우리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 드려진 나실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이미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고, 우리는 모두 거룩한 백성인 것이다. 우리는 나실인처럼 ‘모든 유혹’을 멀리하며, 동시에 ‘가장 큰 기쁨’을 오직 여호와께 두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세족식을 통해, 우리가 이미 목욕하여 깨끗하게 되었으나 발을 씻어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처럼 우리는 죄악 된 세상을 살면서 넘어지고 죄에 빠질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회개하여 다시 우리의 거룩 성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서로 발을 씻어 줄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즉, 우리는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려졌던 나실인, 세례 요한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거룩을 유지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도 이처럼 구별된 사람, 성도로써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며 또한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을 전하는 그런 나실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