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요한복음 12장 12~19절

예주아부지 2025. 2. 13. 07:39

생명의 삶 큐티
요한복음 12장 12~19절

베다니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있고 난 다음 날 예루살렘이다. 명절을 맞아 각 지역에서 올라온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예수님을 맞으러 나가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에게 복이 있도다!” “이스라엘의 왕에게 복이 있도다!” 하고 외쳤다.

앞서 11장 56~57절에서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명령으로, 예수님을 신고하려던 사람이 불과 얼마 사이에 왜 이렇게 정반대로 변했을까? 어쨌든 이들은 본래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 명절을 지키기 위해 각 지역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리새인들도 그렇지만 오히려 성경을 더 알고, 성전과 더 가까운 사람들이 예수님을 더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현대 교회에서도 때로는 신앙 생활을 더 오래하신 분들이 더 믿음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우리의 신앙을 더 자라게 하는 것은, 종교적인 행위나 율법적인 지식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때 예수님께서는 어린 나귀 한 마리 위에 올라타셨다. 이것은 성경(슥9:9)에 기록된 것과 같다.

“시온의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네 왕이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신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때는 이 일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야 비로소 이 말씀이 예수님에 대해 기록한 것이며 또한 그 말씀이 이뤄진 것을 깨달았다.

스가랴 말씀은 겸손의 왕으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나타낸다. 많은 무리들은 이 땅에서의 구원을 원했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을 영원한 죄에서,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시기를 원하셨다. 대적자들을 벌하시고 물리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수가 되었던 우리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러 오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몰랐던 무리들이 성경에 있는 것과 같이 예수님을 환영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셨을 때 함께 있던 사람들이 그 일을 증언했다. 그래서 이렇게 무리가 예수님을 맞으러 나온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런 표적을 행하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된 것은 바로 어제 베다니에 있었던 잔치 때문이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나사로를 구경하러 왔었고, 그들이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에 대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소문이 퍼져, 예수님을 고발하려던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메시야 이심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때 바리새인들이 이 사건을 보고 서로 말했다. “이것 보시오. 온 세상이 예수를 따르고 있으니 우리가 이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소.”

바리새인들이 분개하며 말한 이 말도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되었다. 결국 유대인들을 넘어 온 세상 사람들을 향한 선교예언이 된 것이다.


요한복음에서는 대제사장 가야바처럼, 악한 사람, 무지한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예언됨을 말한다. 물론 그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진 것이지 모든 사람의 말이 그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모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항상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찾는 사람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 양은 내 말을 듣는다”고 하신 말씀이 아닐까 싶다.

예수님 당시에는 성령님이 오시기 전이라 그런지 예수님 제자들부터 많은 믿는 자들도 믿음이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지 못한 모습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반복하고 더 풀어서 설명해주시고, 또한 예수님을 반대하는 바리새인들에게도 진리를 숨김없이 전해주신다(정말 복음이 비밀이 된 것은 그들의 눈이 불신앙으로 가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을 가르치신 것이 그 당시에는 실패하시고 의미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후에 제자들이 그 말씀을 바로 알고 그렇게 담대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았고, 또한 이렇게 말씀으로 기록되어 우리에게도 전해준 것을 보게된다. 우리의 삶도 미련하고 실패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언젠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며, 또한 칭찬하실 것을 기대하며 우리도 열심히 믿음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왕으로 겸손하게 오셨다. 이 땅에서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피하시다가 결국 붙잡혀 무능력하게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한 것 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세상에는 그렇게 보일지라도 예수님처럼 담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그 길을 가야 됨을 기억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환영에도 흔들리지 않으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도 세상에서 흔들림 없이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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