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삶 큐티
요한복음 13:31~38절
31. 유다가 나간 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인자가 영광을 받게 됐고 하나님께서도 인자로 인해 영광을 받게 되셨다.
32. 하나님께서 인자로 인해 영광을 받으시면 하나님께서도 몸소 인자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렇게 하실 것이다.
가룟 유다가 나간 후 예수님께서는 “영광을 받게 됐다”라고 말씀하셨다. 유다가 나간 것은 예수님께 닥칠 고난이 시작될 것을 말한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영광을 받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육신적으로는 괴로운 고통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대속의 사건으로는 영광의 일인 것이다.
예전에 ‘성장’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는 ‘우리의 삶의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우리 자신이 조금 더 예수님을 닮아가는 데 의미가 있고, 이것이 진짜 이 세상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이 생각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성장’이라는 것도, 사실은 너무 내 중심적인 사고방식인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여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생각조차도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은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분명 하나님을 위한 것 같지만, 실은 나 자신을 위한 것만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나 자신을 위해서도 하나님을 믿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진정한 평안, 진정한 행복, 진정한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있고, 결국 내 인생이 성공으로 가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믿는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내가 성장하는 것,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분명 이것이 정답이고 맞는 말이지만, 진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며, 하나님의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되더라도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 나는 어떤 평가를 받고, 어떤 고통을 받더라도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성장하는 것,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이고 고려할 사항이 아닌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일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이르며, 또한 위로와 상을 받을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복을 위해 달려가야 하는 것도 맞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고난, 죽음, 고통을 앞에 두고 “영광을 받게 됐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로 이뤄져 하나님께서 신뢰를 받게 된 것)
33. 자녀들아, 이제 잠시 동안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다. 내가 전에 유대 사람들에게 말한 대로 너희에게도 말하는데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전에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는 제자들도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올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신다(36절). 즉,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영광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 계신 곳으로 예수님이 가시는 것임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계명을 주신다. 그런데 이 계명은 사실 레위기 19장 18절에 “…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라고 하신 말씀의 성취로써 완전히 새로운 계명이 아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새로운 계명이라고 하셨을까? 왜냐하면 이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라는 단서가 붙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율법의 완성이다. 따라서 레위기의 계명이 이제는 새로운 계명이 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사랑이다. 생명을 주는 사랑을 말하며,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즉, 주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믿지 않는 사람들도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알게 된다. 예수님을 전하게 된다.
36. 시몬 베드로가 예수께 물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가는 곳으로 네가 지금은 올 수 없지만 나중에는 오게 될 것이다.”
37. 베드로가 물었습니다. “주여, 어째서 제가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를 위해서라면 제 목숨도 바치겠습니다.”
38.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정말 나를 위해 네 목숨이라도 바치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베드로의 열정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목숨 바쳐 따라가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부인할 것(완벽하 부인할 것)을 말씀하셨다.
인간의 열정과 용기는 신앙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방해가 된다. 우리는 용기 있는 사람, 혹은 세상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도 잘할 것으로 착각하곤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역을 맡기는 사람들은 세상적으로도 잘 나가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물론 세상적으로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 믿음 좋은 경우도 있다) 모세에게 인간적인 열정이 다 꺾이고 나서야 사명을 맡기신 것처럼, 때로는 인간적인 열정이 하나님의 계획보다 앞서며, 자신을 교만하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망칠 수 있는 것이다.
이후 예수님께서 잡혀가실 때,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가다 어린 여종의 추궁을 받고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다. 그리고 닭 우는 소리를 듣는 순간,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자신이 철저히 실패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의 실패를 미리 말씀해 주신 것은 큰 은혜였다. (좌절하지만, 눈물로 회개할 수 있었음은 예수님께서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셨고, 자신의 사명을 완전하게 감당하셨음을 깨닫게 된다. 이를 통해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이 자신의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 실패는 그를 겸손하게 만들었고, 이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찾아와 맡겨주신 사명을 그는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감당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봐야 함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과 베드로의 실언이 참 신앙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의 제자임을, 예수님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 14장 15~24절 (0) | 2025.02.21 |
---|---|
요한복음 14장 1~7절 (0) | 2025.02.20 |
요한복음 13장 21~30절 (0) | 2025.02.18 |
요한복음 13장 12~20절 (0) | 2025.02.17 |
요한복음 13장 1~11절 (0) | 2025.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