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삶 큐티
요한복음 20장 1~10절
1 그 주간의 첫날 이른 새벽,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 입구를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어두운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간 이유는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였다(막 16:1).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렸다가 고침 받고 예수님을 따랐다(막 16:9, 눅8:2). 참고로 다른 복음서에 의하면 마리아 혼자 온 것은 아니다(마 28:1, 눅23:55; 24:1).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이 치워져 있었다. 장정 5명이 힘을 합쳐야 겨우 옮길 수 있는 그 돌이 치워진 것이다(마가복음에는 여인들이 돌문을 여는 것을 염려하면서 갔다는 내용이 나온다(막 16:3)).
2 마리아는 시몬 베드로와 다른 제자 곧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주의 시신을 무덤 밖으로 가져다가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시던 제자는 요한을 말한다. 사도 요한은 자신에 대해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라고 지칭한다.
3 그리하여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려갔는데 베드로보다 다른 제자가 앞서 달려가 먼저 무덤에 이르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달려갔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5 그 다른 제자가 몸을 굽혀 안을 살펴보았는데 고운 삼베만 놓여 있는 것을 보았으나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6 그때 뒤따라온 시몬 베드로가 도착해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가 들어가 보니 고운 삼베가 놓여 있고
7 예수의 머리를 감쌌던 수건은 고운 삼베와 함께 있지 않고 따로 개켜져 있었습니다.
삼베와 머리를 감쌌던 수건이 따로 개켜져 있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나타낸다. 누군가 시체를 옮겼다면 결코 이렇게 수의를 벗겨서 정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도착한 그 다른 제자도 안으로 들어가서 보고 믿었습니다.
9 (그들은 아직도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야 한다는 성경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0 그러고 나서 제자들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보고 믿었다’는 말씀에 대해 예수님의 부활을 믿은 것인지, 마리아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말을 믿은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9절에 내용을 볼 때,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더라도 예수님의 부활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믿은 셈이다. 그러니까 당시 유대인들이 알고 있었던,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쨌든 ‘부활’하셨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보고 믿었다’라는 두 동사가 모두 단수이기 때문에 이는 사도 요한에 대한 이야기로 베드로는 다소 기히 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고, 요한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고 봤다.)
나는 단순히 마리아의 말을 믿은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된다. 다른 복음서들은 모두 제자들이 믿지 않았다고 기록하기 때문이다.
예수님 부활에 대한 사건은 다른 복음서들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가복음(16:1~16)은 안식일 후 첫날 세 여자가 향품을 들고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다고 나온다. 돌을 굴려줄 사람이 없음으로 걱정하며 갔는데, 무덤이 이미 열려 있었고 천사(흰 옷 입은 청년)를 만나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고 나서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그 소식을 전했고 제자들이 믿지 않았다고 나온다.
마태복음(28:1~10)에서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가 천사를 만난다. 큰 지진이 나서 돌이 굴러갔고 무덤을 지키던 자들은 무서워 떨고 있었다. 천사에게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는다.
누가복음(24:1~12)에 의하면 마리아가 천사들에게 “예수님이 살아나셨다” 말을 듣고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 말을 허탄하게 여겨 믿지 않는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말을 듣고 무덤으로 달려가 빈 무덤을 확인하고(놀랍게 여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나온다.
천사를 만난 시점과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한 시점이 엇갈린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막달라 마리아는 천사를 두 번 만났다. 즉 무덤에 갔을 때 바로 천사를 만났으나, 정신이 없어서(믿지 못함) 천사들의 말을 전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누가 가져갔다고 전한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갈 때, 다시 마리아도 무덤으로 같이 갔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을 확인 후 돌아갔다. 이후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울다가 무덤 안을 들여다보고 천사를 또 만났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서, 다시 제자들에게 재차 소식을 전했다.
1. 새벽에 여자들이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다.
2. 무덤은 이미 열려 있었고, 성전을 지키는 자들은 무서워서 죽은 자 같이 되어 있었다.
3. 천사를 만났다.(마, 막, 눅)
4. 제자들에게 알리러 갔다.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남(마)
5.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가 확인하고 돌아감
6. 제자가 돌아갔을 때,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있다가 무덤 안을 봤더니 천사가 있었다(요 20:11~13). 두 번째 천사를 만난 것. 그리고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다시 소식을 알리러 가는 길에 예수님도 만났다(요 20:14~17).
7. 제자들에게 다시 전함(요 20:18)
두 번째는, 처음 무덤에 가서 빈 무덤을 보고(지키던 자들은 이미 도망친 상태이고 천사들도 어딘가 가고 없음), 제자들에게 시신이 없어졌다고 알렸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가 빈 무덤만 확인하고 감. 제자들과 함께 돌아온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근처에서 울고 있다가 천사를 만나고 예수님을 만남. 다시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함. 따라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의 천사를 만난 상황은 요한복음의 천사를 만났을 때로 본다. 즉 다른 여인들은 무덤 근처에 계속 있었고, 마리아만 소식을 전하고 다시 제자들과 함께 돌아온 것. 제자들이 간 후에 천사들을 같이 만났는데, 다른 복음서에서는 마치 무덤에 가자마자 만난 것처럼 서술한 것. 따라서 제자들에게도 천사를 만난 후 소식을 전한 것만 기록했다. 이때 누가복음에 따라서 베드로만 다시 무덤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몸을 굽혀서 무덤 안에 있는 세마포만 보고, 기이히 여기며 돌아갔다.
1. 새벽에 여자들이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다.
2. 무덤은 이미 열려 있었고, 성전을 지키는 자들은 무서워서 도망쳤다(죽은 것처럼 있었거나 천사들이 없어지자 도망쳤다).
3. 빈 무덤을 확인했다.
4.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알리러 갔다.(다른 여인들은 무덤 근처에 그대로 있는 상태)
5.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감. 이때 마리아도 같이 옴.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을 확인하고 돌아감.
6. 제자가 돌아갔을 때,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있다가 무덤 안을 봤더니 천사가 있었다(다른 여인들도 함께 있었음). 그리고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다시 소식을 알리러 가는 길에 예수님도 만났다(요 20:14~17).
7. 제자들에게 다시 전함(요 20:18)
8. 베드로만 다시 무덤으로 가서 들여다보고 옴(눅24:11~12)
정리를 하고 보면 양쪽 다 약간의 문제가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가설이 더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막달라 마리아가 천사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갔다”라고 했다는 점이 이상하기 때문이다.(아무리 믿음이 없어도 내용은 전달했을 것이다.) 게다가 마태복음에서도 천사의 말을 듣고 두려움과 함께 기쁨이 있었다고 나온다(마 28:8). 또한 천사의 말을 듣고 부활에 대한 말씀이 생각났다(눅24:8). (물론 누가복음의 말씀에 따라 베드로가 다시 한번 무덤을 확인했다는 점도 어색하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이쪽이 더 맞는 듯하다.)
(두 가지는 성경말씀의 내용을 맞춰 본 것인데, 크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말씀에 나타난 사건을 세밀히 관찰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정리하면, 제자들은 처음엔 마리아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말을 들었고, 두 번째 마리아의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라고 소식을 들은 것인데, 그때도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믿지 않은 것이다. (오늘 본문 8절에 ‘믿었다’는 말씀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그것도 요한만) 불완전하게 믿은 것이다.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고 9절에 나온다. 따라서 그냥 시신이 없어졌다는 말을 믿었다고 본다.)
물론 막달라 마리아도 천사를 만나고, 또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믿고 체험하게 된다(내일 본문인 요한복음 20장 11절 이후). 예수님의 부활은 그만큼 이 땅의 상식으로는 전혀 믿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믿게 된다.)
우리는 이미 완성된 성경을 보고, 또 이미 성령님이 오셨기 때문에 제자들이나 막달라 마리아가 답답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 역시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주시라’고 고백할 수 없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성령님을 통해, 그 하나님의 믿음에 믿음을 더하는 것이다. 제자들이나 여자인들의 믿음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은 이뤄진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우리에게 은혜로 알게 해 주시는 것이다. 성령님이 생각나게 해 주신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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