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삶 큐티
민수기 5장 11~31절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해 일러라. 만약 어떤 사람의 아내가 탈선해 남편을 배반하고
13 다른 남자와 잠을 자서 그녀가 자신을 더럽혔는데도 그 남편의 눈에 띄지 않고 그 일이 감추어졌으며 아무 증인도 없고 그 여자도 현장에서 잡히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고 하자.
14 그 남편이 질투심이 생겨 아내가 스스로를 더럽혔다고 의심하거나 혹은 아내가 실제로는 부정하지 않은데도 남편이 질투심 때문에 의심한다면
오늘 본문은 아내가 바람을 폈으나 현행범이 아니고 증인도 없는 상황(증인은 두 명이 되어야 한다(신 19:15).) 혹은 아내는 잘못이 없으나 남편이 의심하는 경우에도 해당한다.
15 그는 자기 아내를 제사장에게 데려가야 한다. 그는 그녀를 위한 제물로 보릿가루 10분의 1 에바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 기름을 부어서도 안 되고 향을 첨가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질투의 제물이며 죄악을 생각나게 만드는 기억의 곡식제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의심’은 하나님께 묻게 된다. 이때는 고운 밀가루가 아닌 거친 보리가루를 드려야 했다. 이는 서민들이 먹는 질이 떨어지는 가루인데, 의심하는 남편이나 의심받는 아내나 모두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름을 붓거나 향을 첨가하지 않았는데, 향은 기도(바라는 것)를 상징하고 기름은 부정을 제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께 답변을 구하는 것으로, 의심의 근거와 진실인지 돌아보는 시간이요, 자신들을 생각의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모든 판단을 맡기는 제사였기 때문이다.
16 제사장은 그 아내를 데려다가 여호와 앞에 세운다.
이 가정의 의심은, 지혜 있는 사람의 판단이 아닌 하나님께 맡긴다. 이는 한 가정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판결에 맡기는 것이다.
17 그리고 제사장은 거룩한 물을 질그릇에 담고 성막 바닥에 있는 흙을 가져다가 물에 넣는다.
거룩한 물은 물두멍에 있는 물인 것 같다. 본래는 제사장의 정결을 위해 손, 발을 씻는 물인데 여기서는 그 정결케하는 물과 부정한 바닥의 먼지를 섞어서 심판의 효과를 상징했던 것 같다. (뱀은 저주를 받아 먼지를 먹게 되었다.)
18 제사장은 그 여자를 여호와 앞에 세우고 난 후에 그 머리를 풀게 하고 생각나게 하는 곡식제물, 곧 질투의 곡식제물을 그 여자의 손에 준다. 그리고 그는 저주를 내리는 쓴 물을 자기 손에 든다.
머리를 푸는 것은 극도의 슬픔을 나타낸다. 아내가 남편에게 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19 제사장은 그 여자에게 맹세를 시키면서 말한다. ‘네가 남편을 두고도 부정을 저질러서 다른 사람과 잠을 잔 일이 없다면 네가 이 저주를 내리는 쓴 물로 인해 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20 그러나 네가 네 남편을 두고도 부정을 저질러서 다른 사람과 잠을 자 자신을 더럽힌 적이 있다면’
21 여기서 제사장은 그 여자에게 저주의 맹세를 하게 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네 허벅지가 마르게 하시고 네 배가 부어오르게 하셔서 너로 하여금 네 백성들 가운데서 저줏거리가 되게 하실 것이다.
22 이 저주를 가져오는 물이 네 속에 들어가 네 배를 붓게 하고 네 허벅지를 마르게 하리라.’ 그러면 그 여자는 ‘아멘, 아멘’이라고 말해야 한다.
의식을 시작하기 전에 여인은 하나님 앞에 맹세해야 한다. 죄가 없을 경우 아무런 해를 당하지 않을 것과 죄가 있을 경우 저주를 받게 되는 것으로 두 번 ‘아멘’으로 동의해야 했다. 여기의 저주는 간음에 대한 벌로써 여성의 기능이 파괴되는 벌인듯하다. 반대로 죄가 없는 경우 아이를 갖게 되는 복을 받았다(28절).
23 제사장은 이 저주들을 두루마리에 쓴 다음에 그 쓴 물로 씻는다.
24 그리고 그 여자에게 그 저주를 가져오는 쓴 물을 마시게 한다. 그러면 그 물이 속으로 들어가 쓰라린 고통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아마도 두루마리의 내용이 쓴 물로 옮겨가는 의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주술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이 의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시각화하여 설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5 제사장은 그 여자에게서 질투의 곡식제물을 받아서 여호와 앞에서 흔들고 제단으로 가져간다.
26 제사장은 그 곡식제물로부터 그 여자의 기억을 위해 한 움큼을 가져다가 제단에서 태우고 나서 그 여자가 그 쓴 물을 마시게 한다.
27 그가 그 여자에게 마시게 했을 때 만약 그 여자가 자기 남편을 배반하고 자신을 더럽혔다면 그 저주를 가져오는 물이 속에서 쓰라린 고통을 일으킬 것이며 배가 붓고 허벅지가 마르게 될 것이며 그 여자는 자기 백성들 가운데서 저줏거리가 될 것이다.
28 그러나 만약 그 여자가 스스로를 더럽힌 적이 없고 정결하면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을 것이며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이때는 신정국가로써 하나님께서 바로 응답해 주셨던 것이다. 또한 의심받았던 여인에게는 자식을 갖게 되는 복을 받게 되었다. 의심으로 어려웠던 마음이 하나님께서 치료되고, 이웃 사람들도 그녀의 임신함을 보고 그녀가 무죄한 사람임을 알았을 것이다.
29 이것은 질투에 대한 법으로서 여자가 탈선해 남편을 배반하고 자신을 더럽혔을 경우에 적용된다.
30 혹은 남자가 질투심이 일어 자기 아내를 의심할 때에 적용된다. 제사장은 그 여자를 여호와 앞에 세우고 이 법을 모두 시행해야 한다.
31 그 남편은 죄로부터 깨끗하게 될 것이지만 그 아내는 자신의 죗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해 볼 것은, 남편의 의심은 하나님께서 죄로 생각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의심이 드는 것은 죄가 아니다. 의심하는 것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가져와 해결 받아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맡겼다면 겸손하게 그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려야 한다.
오늘 본문은 부부간의 의심과 외도에 대하여 하나님께 맡길 것을 말씀하신다. 이는 가정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갑갑하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럴 때 다른 그 어떤 것에 기대거나, 혹은 어떤 증거를 잡기 위해, 증명하기 위해 계속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의 믿음이나 말씀을 의심하거나, 혹은 가족 간의 문제 같은 경우다.)
또한 의심이 드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의심이 드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하고 맡긴 후에는 의심을 내려놓은 삶을 살아야 함도 알 수 있다. 요즘 세상에서는 마치 의심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그 ‘의심’을 빨리 하나님께 맡기고 내려놔야 한다.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마음적으로 하는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간에 이야기하고 합의하여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을 바라는 주술적인 행동이 아닌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 본문의 시대는 성경책이 없던 시대이기에 하나님께서 이적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던 특별한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의 제사’를 드렸다면 하나님께서 결과를 주시기 전까지 겸손하게 의심을 내려놔야 했다. 여자가 쓴 물을 마셨다고 해도, 그 즉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마시자마자 저주를 받아 그 자리에서 죽었을 수도 있지만, 그 여자가 결백한 사람이었다고 그 즉시 임신해서 배가 불러오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제사를 드리고 나서는 아내가 결백한 사람이라고 간주하고 생활해야 했었을 것이다. 그렇게 정상적인 부부로 살아가다가 때가 되어 임신이 되면 하나님께서 결백을 나타내 주셨다고 깨달았을 것이다. (혹은 간음했던 여자의 저주가 나타났을 것이다. 왜냐하면 ‘배가 불러온다’는 표현이 있는데 처음에는 ‘임신의 배’인지 ‘저주의 배’인지 몰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의심의 문제를 사람에게 맡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인격을 가지고, 아무리 지혜가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문제일수록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어떤 전문가나 혹은 멘토(사역자)에게도 내 중요한 문제의 결정을 맡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실수가 없으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 사실 기도하거나 기도하지 않거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직, 간접적인 응답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 생각, 내 의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께서 결과를 보여 주실 것이다. 내 의심을 버렸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살아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으로 믿음이 성장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의인인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시는 일이시다(롬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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