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요한복음 4장 1~14절

예주아부지 2025. 2. 5. 23:45

생명의 삶 큐티
요한복음 4장 1~14절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세례를 베푸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알게 되었다. 유대인의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가만히 둘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예수님은 그 자리를 피하기로 하셨다. 예수님은 모든 삶을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셨기에, 아마도 그때는 (유대인들과 부딪치기보다) 하나님의 다른 계획이 있으셨던 것 같다. 그렇게 예수님은 다시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시게 된 것이다.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시는 그 길에 사마리아를 통과하시기로 계획하셨다. 그리고 그 지나는 길에 수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신다.

신학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두 가지 의견으로 나뉜다.

그 첫 째는 주님께서는 그 여인을 만나기 위해 사마리아로 가셨다는 것이다. 수가 동네에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그곳에 복음을 전해주시려고 예정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예수님은 그냥 편견이 없으셔서 사마리아 길을 지나시는 길을 택하셨고, 그 지나던 길에 복음을 나눠주셨다는 것이다. 마치 빵 부스러기를 나눠주시듯 말이다.(마 15:27) 왜냐하면 마태복음 10장에 제자들을 보내시며 사마리아의 동네에 가지 말고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라고 말씀하셨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과거 북이스라엘(사마리아)이 앗수르에 멸망할 때 다른 민족들과 함께 섞이게 되었기에 사마리아인을 경멸한다. 그래서 사마리아를 통과하면 사흘 정도 가면 되는 길을 칠일정도 걸리는 베뢰아로 돌아서 갔다.)

어쨌든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고, 이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 일이다.

(두 번째의 경우로 보자면)

예수님은 굳이 길을 돌아가실 이유가 없으셨기에, 사마리아 수가 동네를 지나가게 되셨고, 피곤하셔서 야곱의 우물 근처에 앉아 쉬시게 되었다. 또 마침 때가 여섯 시쯤(식사 시간)이라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가서 예수님 혼자 계실 때였다. 그리고 그때 또 딱 마침 한 여인이 홀로 물을 뜨러 온 것이다.

(6시는 유대 시간으로 12시이기에 이때를 정오로 해석했으나, 요한복음에서는 로마의 시간을 따르기에 근래에는 저녁 6시로 해석하는 것 같다. ‘한 낮 더울 때 혼자 사람들을 피해서 물을 뜨러 온 여인’이라는 설정이 더 드라마틱하지만, 어쩌면 현실은 그냥 저녁쯤 혼자 물 뜨러 온 여인인 것이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보고 물 좀 달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모두 먹을 것을 사러 가고 예수님 혼자 계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목이 마르셔서 물을 달라고 하신 것 같지만, 사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복음을 전해주시려고 이 말을 하신 것이다.(여인은 끝까지 물을 안 주고 떠났다. ㅎㅎ)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뭔가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 달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무엇인가 해주시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화법은 가히 충격적이다. 대화에 1도 관심 없는 사람도 발끈하게 만드신다. 그 물 좀 달라는 말조차 상식에 어긋나는 말씀이셨다.
“이 우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파서 이렇게 후손인 우리가 이 물을 먹고 있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크시니까?”

야곱의 우물이 얼마나 오래됐는가? 그런데 아직까지도 물이 나와서 마시고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 그런데 다른 물을 준다고 하니, 조상인 야곱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냐는 말이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그러자 예수님은 더 충격적인 대답을 하신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의 질문을 뛰어넘는 신기한 답변으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사마리아 여인은 복음 속으로 스며들어 간다.


복음이란 이런 것이다. 어느 순간,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진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조차, 복음에는 비할바가 아니다. 복음은 이 땅에서 감히 추측할 수 없는 복이기에, 우리의 인생이 송두리째 뒤집어지는 것이다.

이 땅에서 바라고 꿈꾸는 것들은 아무리 채워져도 우리를 다시 목마르게 한다. 인생을 걸고 목매달고 달려들었던 그 젊은 시절의 일들이, 지나 보면 그저 한 때의 치기들로 시시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수는, 우리가 원하는 물과 차원이 다르다. 끊임없이 솟아 나와 우리를 다시 소생케 하는, 영원한 기쁨으로, 진정한 평안으로, 우리를 주님 안으로 인도한다. 그 이상 그 무엇도 필요 없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의 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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