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민수기 25장 1~18절

예주아부지 2025. 5. 19. 14:44

생명의 삶 큐티
민수기 25장 1~18절

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을 때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과 음란한 짓을 저지르기 시작했습니다.
2 그 여인들이 자기 신들에게 드리는 희생제사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초청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먹고 그 신들에게 경배했습니다.

‘싯딤’은 ‘아카시아 나무’를 뜻한다. 즉, 아카시아의 초원을 말하는 것이다. 이곳은 모압 평지인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머문 곳이다. 이곳이 모세가 한 달 동안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한 신명기의 배경이다.

모압 여인들의 미인계에 빠져 이스라엘 남자들은 음란한 죄를 저질렀으며, 또한 그들은 그렇게 우상숭배에도 가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우발적인 일이 아니라 발람에게서 나온 계책이었다(민 31:16; 계 2:14). 당시 모압은 여러 우상을 섬겼는데, 그중 특히 바알신을 섬겼다. 바알신은 다산의 신으로, 바알 숭배와 관련하여 음란한 행위들이 이뤄졌다고 한다.

3 이렇게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의 일에 참여하게 됐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하셨습니다.

‘바알브올’은 벧브올 지방의 바알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측한다. 어쨌든 바알 신을 섬기는데 동참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모든 남자들이 타락한 것은 아니었으나 죄의 영향력이 전 이스라엘에 미쳐서 이스라엘 전체가 죄를 지었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모두 데려다가 여호와 앞에서 대낮에 그들을 죽여라. 그렇게 해야 여호와의 무서운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날 것이다.”
5 그러자 모세가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각자 자기 사람들 가운데 바알브올의 일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죽여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지도자들을 소집했다. 그들은 아마도 공의로운 심판을 하기 위해 소집된 것 같다. 모세는 재판관(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권고로 세운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들을 불러 그 재판관들로 우상숭배 했던 사람들을 죽이게 했다. 다른 번역본에는 ‘태양을 향해 목매달라’고 명령하신다. 5절에 죽이라는 내용을 보건대, 죽이고 나서 매달았거나 혹은 기절한 상태에서 매달았던 것 같다. 태양을 향한다는 것은 ‘바알’이 태양을 상징하는 신이었기 때문에 우상의 무능력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다 확인할 수 있는 대낮에 죄에 대한 교훈을 알리기 위해서라고도 한다. 아무튼 이 사형 판결은 모세의 감정적인 결정이 아닌 하나님께서 직접 내리신 것이다.

(그러니까 지도자들을 죽이고, 재판관들이 우상숭배에 가담한 사람들을 또 죽인 것이 아니라, 재판관들이 사형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그들이 공의로운 심판을 하기 위해 지도자들이 심판을 내린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백성의 지도자들을 죽인 것으로 해석하여 6절의 회중들이 이 지도자들의 죽음을 통해 울고 있었다고 보는데 이는 맞지 않다.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에게 죄를 물었다면, 먼저 모세에게 가장 큰 책임을 지우셔야 한다. 또한 이후에 벌어진 ‘시므온 가문의 지도자’인 ‘살루의 아들 시므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시므리는 시므온 지파를 대표하는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6 그때 한 이스라엘 남자가 모세와 온 이스라엘 회중이 보는 앞에서 자기 형제들에게로 한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마침 회중은 회막 입구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사형이 집행되는 등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었다.) 이런 일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와 회막문에 울고 있을 때, 이스라엘 남자 시므리는 미디안 여자 고스비를 데리고 자신의 장막으로 들어가 음행을 자행하고자 했다. 정말 음욕에 눈이 멀어 짐승 같은 짓을 벌인 것이다.

7 제사장 아론의 손자이며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가 이것을 보고 회중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었습니다.
8 그리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쫓아가 그의 방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는 그들 두 사람, 곧 그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자를 그녀의 배가 뚫리기까지 찔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재앙이 멈추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비느하스는 참지 못했다. 그는 손에 창을 들고일어나서 시므리와 고스비를 꿰뚫어 죽였다. 한 창으로 두 사람을 꿰어 죽였다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이 붙어 있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앙이 멈췄다고 나오는데, 이 재앙은 강한 전염병으로 추측한다. 이 전염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언급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분노하실 때(3절) 시작된 것 같다.

9 그 재앙으로 죽은 사람이 2만 4,000명이었습니다.

재앙으로 인해 죽은 사람이 2만 4000명이었는데, 신약의 사도 바울은 2만 3000명이라고 한다(고전 10:8). 이는 아마도 1000명은 우상 숭배한 백성들을 목매달아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1 “제사장 아론의 손자이며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가 그들 가운데서 나에 대한 열심을 보여 줌으로써 이스라엘 자손을 향한 내 진노를 돌이켰으니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내 질투심으로 인해 파멸하지 않겠다.

하나님께서 비느하스의 분노를 ‘나의 대한 열심’(다른 번역본에는 ‘내 질투심’)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인간적인, 감정의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했음을 말한다. 비느하스의 분노는 하나님의 마음과 똑같았다. 이는 하나님의 질투이며, 역설적으로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일어난 분노이다.

12 그러므로 내가 비느하스와 평화의 언약을 맺는다고 말하여라.
13 비느하스와 그의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영원한 제사장직의 언약이 있을 것이다.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속죄했기 때문이다.”

이 일을 통해 비느하스는 ‘평화의 언약’인 영원한 제사장직을 받는다. (대대로 백성들을 위해 속죄하는 직책인 것이다.) 비니하스와 그 후손들은 엘리 시대의 일시적인 단절(삼상 2:27~36)을 제외하고는 신약 시대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초토화될 때까지 그 명맥이 유지된 것 같다.

14 미디안 여자와 함께 죽임 당한 그 이스라엘 남자의 이름은 시므온 가문의 지도자인 살루의 아들 시므리였습니다.

시므온 가문의 지도자인 시므리는 시므온 지파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여기서 그 출신을 확실하게 밝힌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뼈저린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음행 사건에서 시므온 지파 사람들이 많이 가담했던 것 같다. 이 사건 이후 실시된 인구 조사에서 시므온 지파의 수가 1차 때의 59,300명(민 1:23)에 비해 22,200명(민 26:14)으로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15 그리고 죽임 당한 미디안 여자의 이름은 미디안 가문의 족장인 수르의 딸 고스비였습니다.

‘고스비’라는 이름은 ‘속이는 자’란 뜻이다. 그 이름처럼 시므리를 유혹했던 것이다. ‘수르’는 미디안 종족의 다섯 왕 중 한 사람으로 나온다. 이는 ‘수르’가 이름이 아니라 한 부족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말로 추측된다. 이것은 본 사건에 미디안 종족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7. “미디안 사람들을 원수로 여겨 죽여라.
18. 그들이 브올의 일로 인해서, 브올의 일로 재앙이 내린 날 죽은 그들의 자매인 미디안 지도자의 딸 고스비의 일로 인해서 너희에게 속임수를 써서 너희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분노의 화살이 미디안에게 향한다. 이 전쟁은 민수기 31장에서 실행된다(이때 미디안의 다섯 왕과 발람도 죽게 된다). 특별히 고스비의 이름을 기록한 것은, 그녀가 미디안 지도자의 딸로서 이 사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다고 보인다. 한편 이 사건의 주동 국가인 모압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전쟁을 선포하지 않으신다. 이는 아마도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그 조카 롯의 혈통인 이들을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인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가장 싫어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만큼 분노하시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느하스의 대속 사건을 보면, 언제나 참는 일이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고난을 참는 것으로 온전하게 되지만 때로는 하나님의 열심으로 분노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야 함을 알 수 있다.

우리 믿는 자들은 무기력하고 웃기만 하는, 참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하나님은 공의와 은혜를 동시에 갖고 계신다. 끊임없이 참고 기다리시지만, 또한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도 역시 이런 하나님의 품성을 닮아가야 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품어야 하지만, 그 가운데 올바른 것을 분별할 수 있는 공의도 가져야 한다. 사소한 일도 하나님께 묻기만 하는 어린아이에서 벗어나, 때로는 하나님의 열심으로 분연히 일어나 행동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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