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민수기 11장 24~35절

예주아부지 2025. 4. 9. 07:45

생명의 삶 큐티
민수기 11장 24~35절

24 그러자 모세가 밖으로 나가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백성 가운데서 나이 많은 장로 70명을 불러 회막 둘레에 서게 했습니다.
25 그러자 여호와께서 구름 속에서 내려오셔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며 모세에게 있는 영을 70명의 장로들에게도 주셨습니다. 그 영이 그들 위에 머물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세는 장로 70명을 회막 앞으로 부른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구름 속에서 내려오셔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성령을 70명의 장로들에게도 주셨다. 하나님의 영으로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령을 받아 예언을 함으로 백성들 역시 70인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백성들의 중보자는 모세였으므로, 그 이후로 70명의 장로들은 예언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디까지나 그들의 목적은 모세를 돕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연히 예언을 그쳤다고 하나님의 영 혹은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소멸된 것은 아니다.)

26 두 사람이 진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 하나의 이름은 엘닷이었고 다른 하나의 이름은 메닷이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영이 임했습니다. 그들은 명단 가운데 있었는데도 회막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진 안에서 예언을 했습니다.

70인의 장로 가운데 있던 두 사람이 어떤 이유였는지 회막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특별히 모세를 따르지 않거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내용은 없는 것으로 보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을 주셨다. 이처럼 성막으로 70명을 부른 것은 백성들 가운데 공식적으로 하나님께서 70명의 장로에게 능력 주셨음을 알리시고, 또한 그들이 경건하게 마음을 준비하도록 하신 것 같다. 당연히 하나님께서는 장소와 상관없이 능력을 주실 수 있었다. 의식 행위나 장소는 어디까지나 당시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인 것이다.

27 한 젊은이가 달려와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엘닷과 메닷이 진영 안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28 모세의 보좌관으로서 어려서부터 그를 섬겨왔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했습니다. “내 주 모세여! 저들을 멈추게 해 주십시오!”

모세의 보좌관이 여러 명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그중에는 어려서부터 모세를 섬겼던 여호수아가 있었다. 여호수아 입장에서는 모세의 말을 무시한 장로 두 명이 예언을 하는 모습이 불쾌했던 것 같다. 마치 신약시대의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실제로는 제자들이) 세례 주는 것을 경계했던 모습(요 3:26)이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을 못하게 했던 제자 요한의 모습 같다(막 9:38~39). 이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모세의 입장을 생각했던 공연한 질투다.

29 그러자 모세가 대답했습니다. “네가 나를 위해 시기하는 것이냐? 나는 여호와의 모든 백성들이 예언자가 되고 여호와께서 그 영을 그들에게 부어 주시기를 바란다.”
30 그러고 나서 모세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진으로 돌아왔습니다.

모세는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또 그 뜻을 행하길 원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일은 결국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이 꼭 나를 통해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더 선하시고 더 좋게, 자신의 뜻을 이루실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을 통해, 지금 시대의 우리 모두가 거룩한 백성이 되고 왕 같은 제사장 되었다는 것이 이미 말씀에 나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31 그때 여호와로부터 바람이 일어 메추라기를 바다에서 몰고 와 진 둘레 사방으로 하룻길 되는 면적에 2규빗 정도의 높이로 쌓이게 했습니다.
32 백성이 일어나서 그날 온종일과 그다음 날 낮과 밤 내내 메추라기를 모았습니다. 가장 적게 모은 사람도 10호멜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메추라기를 진 둘레에 널어놓았습니다.

2규빗 정도 높이는 약 1m다. 얼마나 많은 새들이 몰려왔는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며칠 동안 정신없이 메추라기를 모았다. 그렇게 불만을 토로했으면 하나님의 능력에 부끄럽거나 부담이 됐을 수도 있는데, 정말 메추리 모으는 데 빠져 메추리 고기를 주신 하나님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 ( 1 호멜은 약 220 리터로 10 호멜은 2200 리터의 용량이다. 우리 집 양문 냉장고가 800 리터 정도니까 적게 모은 사람이 냉장고 3개의 양을 모은 것이다. 많이, 열심히 모은 것)

33 그러나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서 다 씹히기도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들에게 진노해 극심한 재앙으로 그들을 치셨습니다.
34 그리하여 그곳이 기브롯 핫다아와라고 불렸습니다. 그들이 거기에 탐욕스러웠던 사람들을 묻었기 때문입니다.
35 백성이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이동해 하세롯에 이르러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서 다 씹히기도 전’이라는 표현을 예전에는, 결국 그렇게 먹고 싶어 욕심부리던 고기를 맛도 못 보고 죽었다고 생각했었다. (극심한 재앙은 병에 걸려 죽는 것으로 추측한다.) 그런데 ‘씹는다’는 원어는 ‘먹어 없애버리다’, ‘모두 소비하다’는 뜻이 있어서, 모아놓은 메추라기를 모두 먹기 전에 재앙으로 인해 죽었다는 뜻으로 본다. 어쨌든 탐욕이란 이런 것이다. 얻기 전에는 꼭 갖고 싶고 꼭 필요한 것 같지만, 실상 갖게 되었을 때는 시시한 것이 대부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충분한 은혜를 주셨다. 나에게 부족한 것을 보기보다는 이미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후 12:9; 롬 8:32).

‘기브롯 핫다아와’는 탐욕의 무덤이라는 뜻이다. 시내산에서 3 일길 되는 곳인 바란 광야 근처로 추정한다. 결국 탐욕을 부리던 사람들의 무덤이 되어버린, 이 지역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세롯 역시 인근 지역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오늘 본문은 욕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세상 것에 대해 욕심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능력에도 욕심낼 필요가 없다. 내게 능력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신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일을 위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열심을 내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을 때(하나님께서 원하실 때), 혹은 다들 그 일을 꺼려하는 것 같을 때는 용기 내 도전할 수 있다. 그러나 억지로 꼭 내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자원하는 마음을 기뻐하시고, 정말 특별한 사명의 일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고 강제적으로 사용해 주시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하나님의 일은 서로 연합하여 합력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된다. 어쨌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 딱히 욕심낼 이유가 없다(빌 1:18).

따라서 우리가 진짜 욕심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알아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보다 하나님 더 알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이야기로 하나님의 사랑에도 욕심내야 한다. 사랑을 욕심낸다는 것은, 용서하는 것이고 참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들을 참고, 하지 않는 것이다. 묵묵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고, 순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결국 욕심부릴 것은 없다는 말이다.)

사실 하나님의 일은 나서서 해도 좋고, 시켜서 해도 좋다. 하나님의 일은 그만큼 자유롭고 행복한 축복이다. 왜냐?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때로는 요나나 모세처럼 억지로도 하게 하실 수 있고, 혹 그 일이 아니면 바울처럼 말리실 수도 있다(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려던 것). 그래서 자유롭게 해도 된다. 이렇게 하나님이 알려주시고 바로 잡아 주시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온전히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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