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민수기 11장 10~23절

예주아부지 2025. 4. 9. 01:49

생명의 삶 큐티
민수기 11장 10~23절

10 집집마다 각자의 장막 입구에서 울고 있는 것을 모세가 들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몹시 진노하셨고 모세도 언짢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찬투정. 만나만 먹어야 된다는 생각은 불만에서 절망까지 이르게 된다.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집집마다 울고 있었다. 이게 정말 현실인가? 고기랑 야채, 향신료 먹고 싶어서? (신대륙도 후추를 찾다가 찾았다고 하니….) 결국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다. 그러나 이번에는 침묵하심으로 그 진노를 표현하신다. 사탕 달라고 떼쓰고 우는 어린아이를 무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나는 배고픔만 면하는 꿀꿀이죽이나 캡슐식 약이 아니었다. 그냥 먹을 수도 있고 요리해 먹을 수도 있는 (그것도 단맛이 나는, 맛있는) 음식 재료에 가까웠다. 때때로 사람은 상상과 선동으로 인해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가 겪는 문제들도 어쩌면 별일 아닐 수 있다. (아니면 아직 다가오지 않은 일이거나)

11 모세가 여호와께 말했습니다. “왜 주께서는 주의 종을 괴롭히십니까? 왜 제가 주의 은총을 받지 못하며 주께서는 이 모든 백성의 짐을 다 저에게 지우십니까?

모세가 언짢았던 이유는 울고 있는 백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침묵하시는 하나님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나님은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고 백성들은 울고 떼쓰고 있으니, 중간에서 모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맘고생이 심했던 것 같다. 때때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불신자와 하나님 사이에서 이런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차라리 나 자신이 힘든 것은 괜찮지만, 회사 사람들이나 혹은 가족이나 친척들의 문제 가운데에서, 혹은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에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다.

12 이 모든 백성들을 제가 낳았습니까? 제가 저들을 낳았습니까? 왜 마치 제가 이들을 낳은 것처럼 주께서는 유모가 아기를 품듯이 저들을 제 팔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려가라고 하십니까?
13 제가 고기를 어디서 구해 이 백성에게 주겠습니까? 저들이 저를 보고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고 울어 댑니다.
14 저 혼자만으로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제게는 벅찹니다.
15 주께서 제게 이렇게 하시겠다면 제발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지금 당장 저를 죽이시고 이 곤란한 일을 보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모세는 자신의 무능력함으로 이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하나님께 따지듯 묻는다.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서 200만 명이 넘는 백성들이 전부 다 난리 치니, 차라리 죽고 싶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사실 이것이 바로 모세의 위치였다. 모세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무능력한 것이 당연하다. 아니 오히려 무능력한 모습이 바른 모습이다. 하나님 없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던 젊은 시절의 모세는 젊은 혈기로 살인하고 도망자가 되었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모두 하나님께 맡겼다면, 이런 답답함이나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지는 것이기에, 모세 자신이 홍해바다 앞에서 했던 말처럼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봐야 했다(출 14:13).

그러나 이런 모세의 책임감이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은 남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을 공감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서기를 원하셨다. 소심하고 소극적이고 비관론자였던 모세가 이제 점점 적극적인 모습으로 성장하는 과정인 것이다. (물론 지금 모세는 많이 부족하고 연약하여 하나님께 이런 잘못된 항변을 하고 있다.)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백성의 나이 든 사람들 가운데서 네가 장로 혹은 관료로 알고 있는 사람들 70명을 내게로 데려와라. 그들을 회막으로 데려와서 거기서 너와 함께 서도록 하여라.
17 내가 내려가 거기서 너와 이야기하고 네게 내려준 영을 그들에게도 나눠 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이 백성의 짐을 너와 함께 나눠지고 너만 혼자 지지 않게 될 것이다.

백성의 울부짖음에는 침묵하셨던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 아직 연약한 모세를 위해, 그 책임을 나눠줄 70명의 지도자들을 세우게 하신다. 이들은 성령(혹은 성령의 은사로써 오순절날 강림하신 성령님과 달리 극히 제한적이고 한시적으로 임했다. 때로 성령은 떠나가기도 했다.)을 받아 백성들과 더 가까이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해줄 사람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네가 장로 혹은 관료로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말씀하신다. 아마도 약 1년 전 시내산 언약체결 후 산 중턱에서 모세와 아론과 더불어 화목제의 제물을 함께 먹었던 그 70인의 지도자인 것 같다(출 24:9~11). (혹은 모세에게 함께 일할 사람을 정할 수 있는 재량권을 주셨다고도 볼 수 있다.)

18 백성들에게는 이렇게 말하여라. ‘내일을 위해 몸을 거룩하게 하라. 너희가 여호와의 귀에 대고 울면서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게 해 줄 수 있을까? 이집트에서 살던 것이 훨씬 나았구나’라고 했으므로 내일은 너희가 고기를 먹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줄 것이니 너희가 먹게 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만에 대한 응답도 해주신다. 백성들이 원하던 대로 고기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복이 아니라 징벌에 더 가깝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복’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징벌’도 우리에게는 은혜요, 유익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모든 하나님의 은혜는 거룩하게 준비된 자가 누릴 수 있는 것이다.

19 1일, 2일, 5일, 10일, 20일만 먹을 것이 아니라
20 고기 냄새가 너희 코에 넘쳐서 역겨워질 때까지 한 달 동안 먹을 것이다. 이는 너희가 너희 가운데 있는 여호와를 거부하고 그 앞에서 울면서 ‘왜 우리가 이집트에서 나왔을까?’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지겹도록 주실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도 마음이 상하셨다. 지겹도록, 역겹게 느껴지도록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모독했기 때문이다. 이 ‘이집트’에 대한 부분이 두 번이나 반복되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항상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은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21 그러자 모세가 말했습니다. “여기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 가운데 걷는 사람들만 60만 명인데 주께서는 ‘내가 그들에게 고기를 주리니 그들이 한 달 내내 먹을 것이다’라고 하시는군요.
22 양 떼나 소 떼를 잡거나 바다의 모든 고기들을 다 모은다 한들 그들에게 충분하겠습니까?”

사실 이전에 신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공급해 주셨던 사건이 있었다(출 16:13). 그러나 지금 모세는 백성들의 불만에 동화된 것인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말을 한다. 제사용으로 사용하던 양 떼나 소 떼로도 부족하고, 광야에서 전혀 구할 수 없는 바다의 물고기를 주시더라도 불가능하다고 항변한다.

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그렇게 짧으냐? 내가 말한 대로 되는지 안 되는지 네가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벌써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잊었냐고 물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고 홍해를 갈라 구원해 주셨다. 또한 현재까지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만나로 함께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렇게 은혜 가운데에서도 고정관념에 빠지기 쉽다. 이미 주어진 은혜에는 감사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에 빠져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의심하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욕구 때문에 울고 떼쓰는 것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반찬 투정은 그야말로 뭘 모를 때나, 어릴 때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어린아이 같은 어른들이 많이 있다. 한 의사 유튜버는, 많은 사람들이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실험하듯이 먹고 있다”라고 말한다. 실험용 쥐처럼 말이다.

우리 역시 말씀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할 때가 많다. 일시적이고 한시적이며, 별거 아니라고 하면서도 이 땅의 즐거움을 쫒는 것이다. 때때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기도 한다. 성경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내 삶 가운데 많은 일들은 모두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나 여호와의 손이 그렇게 짧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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